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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평은 남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보던 그의 눈빛이 자꾸 생각났기 때문이다.  

 

     ***

 

 

 

  37....... .와타나베가 비행기 안에서 나오코를 회상하던 나이다. 그리고 지금 내 나이이기도 하다. 37.

  같은 나이, 같은 남자지만 시대적 배경과 환경이 다르기에 고민은 같지 않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건 그는 소설속 인물이고 나는 소설밖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는 하루키가 만든 인물이고 나는... 나는 모르겠다(부모님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쓸데없이 아는게 많은 듯하다). 그렇다 해도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비록 현실과 비현실의 존재이지만, 우리는 서로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것들이 조만간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슬픔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도.

 

  그와 마주 서 있자, 나는 그걸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같은 걸 느끼고 있다고.

 

 

                                                             ***                                                          

 

  영화를 보고 나오다 와타나베와 마주쳤다. 그는 왼쪽으로 꺾이는 복도구석, 지상을 향해 쉼없이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 옆에 서 있었다.

  시사회를 보고 난 사람들은 그 앞을 지나쳐 위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탔다. 나처럼 혼자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은 아무말 없이 빠르게, 누군가와 함께 온 사람들은 재잘대며 빠르게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모두들 굉장히 바빠 보였다. 조금 떨어진 시사회 티켓을 나눠주던 테이블 앞에는 신문사인가 영화 배급사인가에서 나온 카메라맨 두 명이 한눈에 보기에도 묵직해 보이는 카메라를 들고 시사회를 보고 난 사람들을 조심스레 찍고 있었다. 시사회를 개최한 스탭들도 이제 한 숨 돌렸다는 듯 온 몸에 힘을 반쯤 뺀 채 느긋이 마지막 정리를 하고 있었다. 굉장히 지쳐 보였다. 어쩌면 영화관 특유의 조명 탓일지도 모른다.

  그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왠지 내 눈에만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몇 번이나 주변을 돌아봤지만, 어느 누구도 구석에 서 있는 와타나베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나만 그와 마주친 듯 했다. 내가 그렇게 멍하니 서 있자,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몇몇 여자들은 이상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 중에는 영화를 보면서도 참 예쁘게 생겼다 라고 생각했던 여자도 있었다. 그녀 역시 그 앞을 그냥 지나쳤다.

  물론 그가 와타나베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와타나베가 아니라는 증거역시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스물 둘에 처음 만나 십 오년동안 상실의 시대를 읽어 온 힘이랄까? 나는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와타나베다 라고.

 

  그래 스물 둘, 벌써 십 오년 전이다. 상실의 시대란 소설책을 처음 만난 게. 그 때 난 군대 병장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몰라도 내게 있어 상실의 시대는 소설책이 아니었다. 그건 나의 일기장이었다. 처음 읽는 순간부터 그랬다. 그 뒤로 일 년에 최소 세 번 이상은 읽었으니 지금까지 최소한 오십 번은 넘게 읽은 듯 하다. 분명 오십 번을 넘게 읽는 동안 어떤 힘이 생겼는지 모른다. 삶에는 풀지 못한 많은 비밀들이 있으니까, 그런 놀라운 능력이 내게 개발 됐다해도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어떤 이는 몇 년동안 기도한 덕에 신이 보인다고 하지 않은가. 그에 비해 기껏해야 와타나베를 볼 수 있는 능력은 그리 신비롭지도 놀랍지도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

 

  그는 굉장히 지쳐 보였다. 그게 바로 그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다른 무엇보다 그 특징이 그를 와타나베라고 믿게 했다. 그렇다고 옷이나 얼굴이 초라해 보이 건 아니다. 그가 입고 있는 검은 슈트는 고급스러웠고, 매끈한 대리석 바닥을 딛고 있는 구두는 이탈리아 장인이 직접 만든 듯 고급 슈트와 아주 잘 어울렸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구두를 사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 없는데, 그의 구두만큼은 하나쯤 꼭 소유하고 싶은 생각이 들만큼 편안하면서도 멋져 보였. 폭이 아주 좁은 자주 빛 실크 넥타이와 우윳빛 실크 와이셔츠도 잘 어울렸다. 그의 전체적인 모습은 마치 기계로 한 번에 찍어낸 마네킹처럼 어디하나 흠 잡을만한 데가 없었다. 머리 스타일부터 구두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굉장히 지쳐 보였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미뤄보아 와타나베의 옷차림은 여자는 물론 남자까지도 눈을 돌리게 만들만큼 멋졌다. 그럼에도 그를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나는 그가 내 눈에만 보인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가 조금 더 다가가자,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눈을 보는 순간, 확실히 그는 와타나베다 라고 확신했다. 그는 진짜 와타나베였다. 현실과 비현실이 만나는 순간이었다.

  “영화는 어땠습니까?”

  와타나베는 조심스레 방금 본 상실의 시대 감상평을 물었다.

  “솔직히 말해 주면 고맙겠습니다.”

  그는 이제 담배라도 피려는 듯한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표정을 보니, 그는 이미 내 마음을 읽은 듯 했다. 나는 가볍게 숨을 내뱉었다.

  사실 나는 영화를 보던 중간에 이번 영화 감상평은 남기지 않으리라 단단히 결심했다. 친한 동생의 배려로 vip시사회 초대권을 받아 구경 했으니 감상평은 남기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지만, 영화 중간부분부터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더니 엔딩으로 갈수록 이게 영화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 실망했기 때문이다. 무엇을 말해도 그리 좋은 감상평이 나오지 않을게 뻔한데, 괜히 영화가 개봉도 하기 전부터 악플아닌 악플을 남기고 싶진 않았다. 그래도 하루키 팬인데, 그러면 왠지 안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와타나베는 이미 그런 나의 생각은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솔직하게만 말해 주세요. 그게 설령 마음을 아프게 하는 생각일지라도 거짓말 없이 솔직하게.”

 

 

   ***

 

  영화 상실의 시대는 37살의 나가 빠진 관점에서 시작되고 끝나는 영화다. 37살의 나 가 빠져 있다.

  영화 상실의 시대는 영화라기보다는 소설을 보기 위한 예고편 같은 영화다. 영화로써는 전혀 다. 그저 소설의 흐름을 따라가기 바빠, 소설을 읽어 본 적 없는 사람이 본다면 이게 뭐야 라고 할 만큼 엉성하고 조잡하다. 마치 좋은 영화가 머리 몸통 꼬리 로 이루어진 한 마리 매끄러운 생선 같다면, 영화 상실의 시대는 머리만 이어 붙인(머리 머리 머리)이상한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예고편 같다고 하는 말이다. 때문에 소설에서 아무리 감동 깊게 읽었던 대사가 나와도 전혀 감흥 없다. 그냥 막 갖다 붙인 듯 어색할 정도다. 말이 감동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그 말이 나오기 위한 준비단계가 분명 있어야 한다. 관객이 이해할 만큼 충분히 상황이 설명 되야 한다. 영화 상실의 시대에는 그런 게 없다. 그저 상황 보여주기에 바쁘다. 마치 ‘이 전 상황은 설명 안 해도 다 알지? 왜 이런 상황에 이런 행동을 하는지. 소설 읽었잖아 그치?’ 이런 강요를 영화 보는 내내 느껴 몹시 불쾌했다.

영화는 영화 다워야 한다. 만약 한 편의 영화에 다 담아낼 수 없다면, 시리즈로 만들어 한편은 와타나베 편, 다음은 나오코 다음은 미도리, 이런식으로 각 편마다 소설 속 감정을 좀 더 디테일하게 만드는 게 훨씬 더 좋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면 오히려 소설을 수십번 읽었던 독자라도 또 다른 새로운 감정을 느꼈을 듯하다. 이번 영화처럼 엉성하게 만들 바에야 그게 낫을 거라 생각했다. 그럼 분명 백튜더퓨처 같은 시대가 지나도 다시 되돌려 보게 만드는 멋진 세 편의 시리즈 영화가 만들어 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또 하나는 등장인물의 색깔이다. 이건 뭐,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스토리 진행은 진행이랄 것도 없이 그저 보여주기 수준이니 논의 대상도 아니였고, 등장인물의 표현은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나는 영화를 보고나서 나오코가 섹스중독자라는 사실을 발견했고, 매 장면 이상한 미소를 짓는 미도리를 보고 나서는 분명 마리화나를 엄청 피우고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됐다. 레이코 여사는 그저 힘없는 중년 여자였다. 그나마 제일 완벽한 인물은 기즈키였다. 기즈키가 죽는 장면은 정말 소설의 분위기를 그대로 표현해 냈다. 그리고 그는 완벽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영화 속에서 죽었다. 정말 죽은 그만이 완벽했다. 영화에서 살아있는 인물들은 모두 가면을 쓴 채 ‘내 역할이 뭔지 알죠? 나에요 나.’ 라고 하며 어색한 연기를 하고 있다. 정말 기즈키만 빼고는 모두 처음 연극무대에 선 배우들 같았다.

  생각이 이쯤 되자, 정말 감독에게 묻고 싶었다. 도대체 뭐 말하고 싶었던 건 가요? 컬트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건가요? 아니면 하루키씨가 협박이라도 하던가요? 소설보다 잘 만들면 절대 상영하지 못하게 할거라고? 물론 소설 상실의 시대도 소설로써는 형편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건 소설이 아니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상실의 시대가 엄청난 흥행을 거든 이유는 단 한가지 뿐이다. 바로 작가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그 숨결을 통해 공감을 하고 감동을 하고 위로 받을 수 있다. 나는 그게 소설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 생각한다. 완벽한 스토리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소설이라면, 비록 스토리가 약하더라도 소설로써는 그 어떤 소설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소설이라 생각한다(몇몇 꼰대들은 내 말에 찬성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영화 상실의 시대는 그 숨결이 없다. 소설 상실의 시대가 흥행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망각한 채, 그저 소설을 베끼기 바쁘다. 감독은 분명 그 숨결을 찾아 영화 속에 표현해 내야 했다. 그게 영화감독의 역할이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게 아니면 감독이 있을 필요가 없다고.

 

 

   ***

 

  와타나베에게 한 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도 중, 조금 떨어진 곳에서 플래쉬가 터지는 걸 느꼈다. 나는 순간 말을 멈추고 그 쪽을 보았다. 아까 티켓 테이블 근처에서 시사회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을 찍던 카메라맨 중 한 명이 나와 와타나베를 찍은 듯 했다. 그는 방금 찍은 화면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웃 거렸다. 그리고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리고 곧장 내게 다가왔다. 나는 고개를 돌려 와타나베를 보았다.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카메라맨이 더 가까이 다가오기 전에 서둘러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카메라맨은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사호선을 타고 안산으로 오면서 역시 이번 영화 감상평은 이야기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와타나베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무엇에 그리 지쳐 있던 걸까 싶은 의문이 들었다. 전철이 터널을 진입하자마자 전철 유리창에 와타나베가 보였다. 나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주변 어디에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유리창에는 그가 비춰졌다. 우리는 잠시 서로 바라봤다. 왠지 그의 옷이 조금 달라 보였다. 특별히 모양이 변했거나 색깔이 완전히 바뀐 건 아니었다. 그런 건 모두 그대로 였다. 다만 그 질감이 마치 수 십이란 시간을 보낸 옷처럼 조금 지난 오래되어 보였다. 그 선명하던 자주빛 실크 넥타이 마저도. 우리는 잠시 서로를 잠시 쳐다봤다. 내가 먼저 가볍게 웃자, 그도 웃었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두렵니?”

  나는 잠시 그 말을 생각해 봤다. 그리고 대답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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