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요가를 한지도 벌써 사년이 되어간다.
만약 굉장히 열심히 했다면, 지금쯤 공중부양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현실의 나는 그렇지 않다.
동작은 기껏해야 헤드스탠드(머리와 손을 이용해 거꾸로 서는 동작. 핸드 스탠드보다 쉬움) 정도 할 수준이다.
그외에는 가끔 숨쉬는 게 왜 행복한지도 알 것 같고, 온 몸에 세포들이 꿈틀대고 있다는 게 무엇인지도 알 것 같다(세포하나하나가 꼭 개구쟁이 꼬마들처럼 힘이 넘친다).
또 가끔은 잠들기 전, 이마 정면에 우주가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럴때마다 내가 발을 딛으며 살고 있는 이 지구라는 별이 이마에 맞닿아 있는 이 우주에 비해 얼마나 작고 초라한 행성인지 새삼 깨닫고는 한다.
항상 이런 감정을 매 순간 느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욕심이 든다.
물론 그 때문에 요가를 계속하는 거지만.
한번은 나의 생각을 듣고 어떤 요가 지도자가 이렇게 말했다.
"대단한 도인 한 명 나셨네."
겉으로는 웃었지만, 기분이 몹시 나빴다(아마 그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을 거다). 나는 솔직한 느낌을 말했는데, 그런 식으로 비꼬는 듯한 말을 들었으니 말이다.
물론 요가 분야에서만 보자면, 나보다 훨씬 더 대단한 남자였다. 다운 독에서 점프해 바로 까마귀 자세로, 까마귀 자세에서 바로 핸드 스탠으로 올라가고, 그 상태로 다리만 천천히 등 뒤로 넘겨 후굴자세가 될 정도니 나랑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 남자였다. 요가를 했던 사람이라면, 지금 내가 말한 동작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금방 알 수 있을거다. 정말 써커스 수준인 것이다. 그의 아래에서 수업을 받고 요가지도자가 된 사람들고 많고, 요가 분야에서는 어느정도 이름이 알려진 남자였다. 그러나 나는 처음 본 순간, 그가 그다지 대단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 역시 사람일 뿐이고, 단순히 다른 사람에 비해 몸이 유연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내가 생각하는 요가는 이랬다. 요가의 진짜 목적은 어려운 자세를 하느냐 못하느냐가 아니라, 막혀 있는 호흡을 뚫기 위해 계발된 수행법이라고. 열린 호흡 속에서는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하고 싶은 기쁜 감정이 생겨나고, 그로인해 곧 자기자신도 행복하게 된다. 그 이상 좋은 행복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행복해지는 법칙이니까. 그 법칙의 첫번째가 바로 열린 호흡이다. 나의 호흡이 열려 있어야 모든 건 그 다음이다. 하지만 나쁜 습관에 의해 굳어진 몸으로는 그런 열린 호흡을 하기 힘들다. 그래서 오래전 인도인들은 요가를 탄생시켰다. '그래 마음의 행복을 찾기 전에 나쁜 습관으로 길들어진 몸을 먼저 정화시키자.' 라는 목적으로. 그게 요가의 진짜 목적이라고. 몇 천년전 일이라 볼 수 없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이런 나의 생각으로 보면, 그는 그저 유연한 사람일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왠지 그가 요가를 하는 목적은 행복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어려운 동작을 하기 위한 목적인 것 같았다. 마치 써커스 공연을 준비하는 광대 같았다. 왜냐면, 그렇게 어려운 동작을 하면서도 그의 얼굴에서는 기쁨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늘 진 얼굴이다. 열심히 호흡은 하지만, 언제나 가슴 아래 머물러 있다. 아무리 고난위도 동작을 해도 호흡이 정수리를 뚫고 가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 내 생각은 이렇다. 첫 단추가 잘못됐다. 다시 타타사나로 갈 필요가 있다. 모든 걸 버리야 한다. 그게 가능할지 모르지만.
요가는 행복을 찾아가는 수 많은 방법 중 하나다. 어떤이는 봉사를 통해, 등산을 통해, 책을 통해, 아니면 또 다른 운동을 통해 행복을 찾을 수도 있다. 요가는 그 여러가지 기호식품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다른 것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어떤 방법보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한 빠르게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 다만 단점이라면, 고통도 함께 경험 하기에 행복이 존재했는지 조차 모른다는 점이다. 그럼 왜 고통은 어떻게 없애는가? 여기에서 질문은 잘못됐다. 고통은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행복과 함께 즐겨야할 감정이다. 요가는 그걸 최대한 빨리 깨닫게 해 준다.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일단 고통을 즐겨야할 필요성이 있다는 걸. 그보다 더 빨리 행복을 찾는 방법은 바로 명상이다. 그럼 왜 바로 명상을 하지 요가를 하냐고? 그건 모든 기술 중 명상이 최고급 기술이기 때문이다.
명상은 모든 방법의 끝에서 반드시 만나게 되는 가장 최상위 방법이다. 그리고 명상은 행복을 넘어선 그 무엇의 상태로 우리를 데려다 준다. 그저 눈만 감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마음을 다스릴 줄 모르는 상태에서 명상에 들어가는 건 아주 위험하다. 그건 힘도 없는 자가 호랑이와 싸우려는 것과 똑같이 무모하다. 일단은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힘을 길러야 한다. 무엇을 통해? 바로 봉사, 등산, 책, 운동, 요가 등을 통해. 이 모든 걸 통해 행복을 느끼고 마음을 내려다 볼 줄 아는 여유를 가진 뒤, 명상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명상은 아주 위험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때문에 수 많은 사람들이 명상을 하다가 블랙홀에 빠져 버린다. 그러니 함부로 자리에 틀어 앉지 마세요.
자랑할 건 아니지만, 사년 동안 요가를 하면서 나름 요가 지도자 자격증도 갖고 있다. 그러나 요가를 오랫동안 해오신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지도자 자격증이란게 알고보면, 길거리에 버려져 있는 전단지보다 더 값어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라 생각한다. 하긴 어떤 자격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중요한건 그런 게 아니란걸. 어쨌든 나는 그런 종이 쪼가리를 집에 한장 갖고 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조금 자극이 강하겠지만, 휴지가 떨어지면 저걸 사용해야 겠군.' 이라고. 만약 이걸 또 그가 듣는다면 이렇게 말하겠지 대단한 도인 한명 나셨군 이라고. 그럼 그 때는 말해야 겠다.
"쳇 똥이나 싸라."
이건 결코 욕이 아니다. 좀 더러운 표현이긴 해도, 요가는 정말 똥을 잘 싸기 위한 준비 운동일 뿐이니까.
나마스테. -()-
(참고: 이건 수필을 가장한 소설형식의 글입니다. 혹시나 여기 요가 지도자를 찾으시려면 현실에 없음을 알려 드려요. ^^~)
***참, 동영상 편집기에 대해 개인적으로 좀 알려주실 분 없나요? 아무래도 다음편집기 정도로는 너무 성에 안차네요.
저는 지금 시간이 남아 도니까, 서울 정도는 가능합니다. 커피 정도 밖에 사 드릴 수는 없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