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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언제나 앉던 테이블은 역시나 비어 있었다. 나는 일단 방금 뽑은 커피를 홀짝이고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스피커에서는 투에니원의 고 어웨이가 흘러나온다. 펑키 리듬은 내 몸과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웃겼다. 나는 전혀 신나지도 않는데. 그렇게 시원찮은 댄스를 추며 점퍼와 가방을 벗어 의자위에 놓고 가방에서 노트북과 코드 선을 꺼냈다. 노트북 전원을 켜고 코드 선을 연결했다. 그리고 나는 좌석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천천히 마시며 노트북 프로그램이 가동되기를 기다린다. 날씨가 너무 추운 탓일까. 커피는 생각만큼 따뜻하지 않다.

 

am 12:30 롯데리아.

 

손님이라고는 이 넓은 매장에 나를 포함해 세 명뿐이다. 나는 돼지코를 때문에 구석에 앉아 있고, 오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녀 커플은 창가에 앉아 햄버거 세트를 먹고 있다. 투에니 원은 지나갔고, 이제는 알지도 못하는 아이돌 가수의 노래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시끄럽다. 빨리 먹고 꺼지라는 의미다. 물론 난 불평할 처지가 못된다. 겨우 이 천원짜리 커피를 마시면서 밤 새도록(롯데이라는 이십 시 간에 의자도 푹신해 정말 좋다) 돼지코를 사용하면서 넓은 공간을 혼자서 차지하고 있으니 그저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스피커를 통해 빨리 꺼지라는 듯 노래 소리를 높여도 나는 꿋꿋이 견뎌내고 있다. 그런 탓일까. 가끔 누군가 나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해 줘도 잘 못알아 듣는다.

별빛이 유난히 맑아 보이는 추운 겨울 밤,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무엇을 위해? 글쎄다. 아직은 모르겠다.

몇 일전, 티브이에서 러시아 문학 여 교수가 톨스토이의 삶에 대해 강연하는 걸 보았다. 그녀는 철저히 여성의 관점에서 톨스토이를 말했다. 여 교수는 톨스토이의 미친 짓의 그의 아내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 되었는지 설명했다. 태어날 때부터 굉장한 러시아 부자였던 톨스토이는 이미 서른 살 초반에, 소설로 인해 엄청난 부와 명예를 동시에 가진 남자였다. 그런 그가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며, 부자를 경멸하고 자신의 모든 재산과 출판권까지 사회에 환원하려 했다. 아내는 깜짝 놀랬다. 이 미친 놈! 우린 어떻게 살라고! 그래도 톨스토이는 굽히지 않았다. 인간은 모든 물질을 버림으로서 행복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아내를 향해!! 티브이에 나온 여 교수의 말에 의하면, 톨스토이는 죽는 순간까지 ‘거지’를 지향했다고 한다. 물질이 없는 순간부터 인간은 비로써 행복해 질 수 있다고. 그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 생각했다. 참 웃기는 생각이지만, 들어보기 바란다.

‘뭐야, 그럼 내가 톨스토이보다 훨씬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이야??’

나는 따뜻한 전기장판에 이불을 덮고 누워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진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나에게는 아내와 자식들이 없으니까. 내가 아무리 톨스토이처럼 거지가 되겠다고 소리쳐도 누구하나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괴롭히지도 않으니 말이다. 난 그러면 된다.

난 톨스토이가 말한 행복의 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문이 저 앞에 있다. 정말 바로 코앞이다. 그런데 그 때, 누군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걷다 말고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다. 그리고 주변도 텅 비어 있다. 순간, 뭔가 잘 못 됐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쉽게 행복의 문에 들어서는 건 뭔가 이상했다. 나는 고민에 빠진다. 왠지 이대로 들어가면 안 될 것 같다. 그 때 또 무슨 소리가 들린다. 나는 또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없다. 뭔가 자꾸 부르는데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발가락부터 차가움이 올라오더니 금새 온 몸을 휘감았다. 꼼짝을 할 수 없었다. 톨스토이적 행복이 바로 코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순간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따뜻한 전기장판에 누워 있어도 수면 양말을 신지 않으면 춥구나’ 라는 현실이었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한 주였다. 멋진 구두 속에 구멍 낸 양말을 신고 있는 기분이라고 할까. 그랬다. 남을 속일 수는 있지만, 나 자신은 속일 수는 없었다.

나는 사직서를 내기 전, 일 년 동안 수백 번을 생각했다. 일이 힘들기 때문에 그만 두는 건지, 욱하는 순간의 감정에 의한 것인지, 일하는 시간처럼 몇 시간동안 글을 쓸 열정이 넘치는지, 나 자신에게 계속 질문했다. 그리고 순간의 감정도 회피의 수단도 아닌, 남은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기 위해 당장은 글을 써보자 라는 거창한 구호를 외치며 그만 뒀다. 그게 한 달 전이다. 잘해 왔다. 겨우 일주일 동안만. 일주일이 지나자 하루에 한 문장 쓰기도 힘들었다. 직장을 다니며 글 쓸 때는 그토록 또렷하던 정신이 매일 노는 대도 순두부처럼 물러 터졌다. 요가를 해도 그다지 효력이 없었다. 그저 몸만 피곤할 뿐이었다. 툭하면 감기에 걸렸다. 감기약도 먹을 수 없었다. 왜냐면 약 기운으로 글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절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럴 려고 직장을 그만 둔건가 싶은 자책감이 밀려왔다. 그러다 결국 이번 주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이틀 동안 미친 듯이 잠만 잤다. 요가도 하지 않고 소설도 쓰지 못한 채. 자다 배고프면 일어나 밥을 먹고 멍하니 티브이를 보다 또 잤다. 그러다 또 배고픔에 일어나 밥을 먹고 티브이를 보다 지쳐 잤다. 그렇게 이틀 동안 자고 일어났더니 무의식속에 감추어진 문제를 보게 됐다. 직장을 그만두었으니 팍팍 써대야 한다는 생각과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직장은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코어였다. 하지만 스스로 삶의 중요한 코어를 바꾸기 위해 직장을 그만 두었다. 그러나 몸과 정신은 강박 관념으로 인해 새로운 코어를 중심으로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문제를 발견했다고 해서 속 시원하게 해결을 한 건 아니다. 오늘도 그 문제를 그대로 껴안은 채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했다. 멋진 구두 속에 구멍 뚫린 양말을 신고서. 그래서 별빛이 유난히 맑아 보이는 추운 겨울 밤, 잠도 이루지 못한 채 참회하는 심정으로 글을 쓰고 있다.

 

am 2:30 텅 빈 롯데리아.

 

이제 아무도 없다. 나 혼자 뿐이다. 직원들조차 올라오지 않는 새벽이다. 그 동안 여러 명이 이 공간에 머물렀다 사라졌다. 쓰레기 통은 입구까지 꽉 차 있다. 이제 나도 가야 할 때다.

멀리 떨어진 벽에 붙은 유리에 한 남자가 보인다. 마스크를 쓰고 후드를 뒤집어 쓴 서른 일 곱, 노란색 아디다스 운동화에 부모가 지어준 이름보다 스스로 지은 파이란 이름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남자다. 결코 말을 걸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지 않다. 아마 여자는 더 할 것 같다. 내가 볼 때마다 자꾸 눈이 마주친다. 진짜 기분 나쁘게 생겼다. 빨리 자리에서 떠야겠다.

마지막으로 요즘 스콧 니어링 자서전을 읽고 있는데 아주 마음에 드는 문장을 읽었다. 원래 명언 같은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꼭 소개하고 싶은 문구다. 이 문구를 잘 자라는 인사로 대신하고 싶다.

‘네 자리에 남아 진리가 이끄는 길을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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